모바일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전자정부는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의 업무를 전자화하여 행정기관 등의 상호간의 행정업무 및 국민에 대한 행정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정부를 말한다. 인터넷 환경이 PC에서 모바일로 변화함에 따라 전자정부 역시 PC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스마트폰에서 구현되도록 진화하였다.
이제까지의 모든 커넥티드 디바이스 중 스마트폰이 현재 가장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이 없지만, 스마트폰 이후에는 IoT 환경하에서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수준으로는 당장 스마트폰을 대체하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입력UI/UX나 디스플레이, 배터리, 발열처리, 방수 등 아직도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스마트폰을 대체하기까지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아있다.
2014년까지의 초기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삼성 갤럭시 기어나 소니 스마트 워치와 같은 시계형태와 나이키 퓨얼 밴드, 핏빗, 조본과 같은 밴드형 제품으로 크게 나뉘어 개발되었으며 제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에서 크게 차별점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구글글래스나 애플워치 등 웨어러블디바이스의 발전을 보고 있자면 멀지 않은 시점에 웨어러블디바이스가 스마트폰을 대체하며 일상적으로 사용될 것을 알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전자정부
웨어러블디바이스는 단순히 스마트폰을 작게 만들어 손목이나 신체에 부착하는 기기가 아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일반적인 건강관리 외에 신체적인 장애까지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 구글글래스와 같은 기기를 이용하여 청각장애나 언어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며, 음성입력과 제스처를 이용하면 시각장애인도 손쉽게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이제까지 전자정부 서비스에 접속하기 어려웠던 장애인들도 앞으로 다가올 웨어러블디바이스의 시대가 되면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모든 국민을 위한 전자정부가 구현될 수 있다.
2015년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대중화의 첫해
2015년은 웨어러블디바이스가 대중화하는 첫해로서 애플워치와 이에 대응하는 구글워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웨어러블디바이스 생태계가 구축된다. 이제까지의 웨어러블디바이스가 전체적인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개별적인 기기의 기능과 디자인에 치중되어 에코시스템이 부재하고 웨어러블기기간의 호환성이 유명무실했지만 내년부터는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애플과 구글을 중심으로 플래폼으로서의 웨어러블디바이스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전자정부 역시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민간 웨어러블디바이스 업체와 협력하여 새로운 웨어러블디바이스의 환경에 대응하고 개방형 표준을 지향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의 다양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표준 전자정부 웨어러블디바이스 프레임워크 1.0의 준비가 필요하다.
웹과 모바일에서 보여주었던 전자정부 프레임워크의 선도적인 자세 및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통해 장차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정부에서 사용하는 차세대 표준 전자정부 for 웨어러블디바이스로서 자리매김할 것을 기대한다.
IoT (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이라는 이 단어가 근래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IoT와 더불어 같이 이야기 되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들이 M2M, Machine Learning, Big Data, Wearable Device 등이다. 이 단어들은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 이걸 가지고 어떤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AIDC ((Automatic Identification and Data Capture)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IoT는 1999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오토아이디센터(Auto-ID Center) 소장 케빈 애시턴(Kevin Ashton)이 향후 RFID(전자태그)와 기타 센서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사물에 탑재한 사물인터넷이 구축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시장분석 자료 등에 사용되면서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출처 두산백과) 개념적으로야 그렇다지만 실제로 IoT라는 단어가 업계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IoT와 그 밖의 용어들과의 관계
광의의 사물인터넷이란 인터넷이 가능한 모든 기기를 포함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PC나 노트북도 인터넷이되는 사물이고,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이다. 90년대 후반에 이미 인터넷되는 냉장고나 TV도 개발한적 있으니 특별히 새로운 개념이라 볼 수 없다. 우리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협의의 사물인터넷 IoT는 단순히 인터넷이 되는 사물에서 한 단계 진화된 기술을 지칭한다.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이 사람이 조작하지 않아도 상호간에 알아서 정보를 처리하는 상호작용 기술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인간에 의존하지 않고 통신을 주고받는 점에서 기존의 유비쿼터스나 M2M(Machine to Machine: 사물지능통신)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통신장비와 사람과의 통신을 주목적으로 하는 M2M의 개념을 인터넷으로 확장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이게 가능해진 가장 큰 기술적 베이스는 IPv6 덕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각 기계들이 고유한 주소를 가져야 한다. IPV6는 그 이전에 사용하던 인터넷 주소체계인 IPv4를 개선한 128bit의 주소체계로 간단히 설명하면 IPv4는 32비트라 4억개의 제한된 주소를 사용 할 수 있는데 반해 IPv6는 128비트의 주소체계로 3.4*10 38 개의 IP주소수를 가지고 있다. 개인이 사용하는 IP 숫자를 생각해보자. 집의 PC와 회사의 PC. 스마트폰과 패드, 스마트 TV, 공유기만 하더라도 벌써 6개의 인터넷 주소가 필요하다. 갤럭시 기어나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아이팟, 인터넷 라디오라도 있으면 숫자가 더 늘어난다. IPv4의 4억개로는 감당이 안 된다.
M2M이 기계간 이루어지는 통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IoT보다 더 큰 개념처럼 보일 수도 있다. M2M 역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기기가 센서로 모은 단편 정보를 다른 기기와 통신하면서 인간이 윤택하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서로 반응해 주변 환경을 조절해주는 기술이다. M2M은 홈오토메이션, IP-USN, 유-헬스케어, 스마트 그리드 등 여러 갈래로 발전해 오던 기술들의 개념을 통합해 M2M으로 정의했지만 표준화되지 않아 국제 표준 제정을 두고 각국 연구 기관과 표준화 기구의 주도권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IoT는 M2M이 좀더 진화한 모델이라 생각할 수 있다.수 많은 기계가 연결되다 보니 사물들간의 인터넷에서의 데이터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기술인 빅데이터가 자연스레 등장한다. 기계 학습이라 불리는 머신러닝은 기계와 기계가 반복적인 작업들을 수행하면서 얻어내는 데이터에 패턴과 개선과정을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웨어러블 컴퓨팅은 또 다른 의미에서 IoT의 확장이다.
옷이나 시계·안경처럼 자유롭게 몸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를 말한다. 소형화·경량화를 비롯해 음성·동작 인식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다. 구글이
내놓은 스마트 안경인 구글 글라스, 말하는 신발(Talking Shoes), 애플과 삼성,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각각 개발하고 있는 스마트 시계인 아이워치, 갤럭시워치, 윈도워치 등을 웨어러블 컴퓨터라 할 수 있다. 신발·시계·안경·옷
등 웨어러블 컴퓨터들은 스스로 제어·판단을 한 뒤 사용자에게 맞춤형 기능들을 제공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출처 트렌드 지식사전-인물과사상사)
이제까지 나온 유명한 기기들을 살펴보면 (구글 글래스를 제외하고) 폼팩터로 보면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페블워치나 갤럭시 기어와 같은 ‘시계형
기기’이고 비슷하게 손목에 차지만 시계형이 아닌 ‘밴드형
기기’이다. 사실 웨어러블 기기를 편의상 형태별로 나누긴
했지만 웨어러블 기기를 폼팩터로 나누는 것은 적절한 분류 방법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달리
웨어러블 기기는 특정하지 않은 형태로 얼마든지 구현 가능하다. 구글은 안경 뿐 아니라 콘택트 렌즈 형
기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가발이나 목걸이, 반지, 장갑 등 무엇이든 웨어러블 기기가 될 수 있다. 형태별로 분류하자면
제품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분류가 생겨나야 한다.
오히려 형태적인 측면의 분류보다는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분류가 더 타당하다. 나이키나 조본은 일종의 만보계로서 사람들의 운동량과 거리 등을 측정한다. 액티비트 트래커(Activity Tracker)로 분류하고, 페블워치는 스마트폰과 연동하여 전화나 메시지가 오는 것을 알려주는 노티피케이터(Notificator)이다. 갤럭시 기어는 두 가지 기능이 다 있지만 주로 사람들이 노티피케이터로 사용한다. 웨어러블 컴퓨팅의 등장으로 사람이 직접 브라우징하는 기기가 PC, 스마트폰에서 안경이나 시계, 밴드, 신발로 더욱 분야가 넓어진 것이다.
IoT를 이용한 새로운 사업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부터 자동판매기, 현금자동지급기, 자동차, 건강 정보를 수집하는 헬스케어 장치와 가스, 전기, 수도 검침기, 온도와 습도 조절기 등 IoT를 접목할 수 있는 기기는 무궁무진하다.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가로등을 제어한다든가 어느 길이 안 막히고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지 알려주는 것들이 모두 IoT를 응용한 기술들이다. 그 중에서 근래 가장 주목받고 있는 IoT 관련 사업은 바로 애플이 근래 발표한 ‘iBeacon’ 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비콘(Beacon)이라는 단어는 봉화나
등대처럼 약속된 표시로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도구를 뜻한다. 조선분야에서는 전파를 발신하며 배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며, 고산 등반 시 눈사태로 매몰되었을 때 사람을 찾는 장치도 비콘이다. 비행기의 블랙박스 역시 비콘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iBeacon은 위와 같은 개념을 기반으로 블루투스 기술을 응용하여 애플이 만든 기술이자 서비스플랫폼이다. 아이비콘 장치의 비콘 신호 영역 안에 아이폰을 소지한 사람이 들어오면, 아이폰에 그 지역에 특화된 여러 서비스, 예를 들어 자동 체크인, 쿠폰 제안, 실내 위치 파악, 자동 결제 등의 애플리케이션이 가능하다. iBeacon이 실제로 어떻게 서비스에 이용될까? 애플이 내놓은 iBeacon의 커머스 서비스 시나리오를 보면 점포 앞에 지나는 사람들의 스마트폰으로 현재 옆을 지나고 있는 가게의 세일정보를 알려준다. 자신의 스마트폰의 세일 정보를 보고 가게에 들어가면 다시 비콘을 통해 할인쿠폰을 날려주어 구매를 유도한다. 물건을 둘러보는 고객의 위치를 파악하여 바로 앞에 있는 물건의 정보를 알려줄 수 있으며 고객이 관심이 있지만 망설일 경우 재차 그 물품에 대한 추가 할인이나 적립을 유도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현금이나 카드 없이 iBeacon을 통해 결제를 할 수 있다.
비콘이 서비스적으로 강력한 이유는 실내에서 고객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비콘은
실내에서 5cm~49M의 범위의 위치를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이게
어떤 의미 인가하면 고객이 가게 내에서 어떤 상품코너나 물건 앞에 있는 지 알 수 있으며,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문다면 해당 물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구매를 유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해당고객이 집에 있거나 회사에 있을 때에도 해당 제품의 세일정보나 할인쿠폰을 보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제품이 구석에 있는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머문다면 의도적으로 좀더 잘 팔리도록 전시위치를 좋은 자리로 옮기고 반대로 사람들의 관심이 낮은 제품은 매대에서 치워버림으로서 매장관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비콘은 커머스 뿐만 아니라 전시에서도 효율적으로 사용이 가능한데, 전시회에서 오디오가이드를 빌리지 않아도 해당 그림 앞에 서면 자동으로 그림에 대한 설명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전시회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고 반납 받는 데 들어가는 시간, 비용, 번잡함, 오디오가이드의 분실과 고장, 그림을 설명하는 도슨트를 운영하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매우 경제적이고 적합한 서비스이다. 마찬가지로 관람자가 특정 그림 앞에 오랜 시간 서서 감상했을 경우 전시를 끝내고 아트샵 앞을 지날 때 해당그림과 관련된 아트상품의 정보나 쿠폰을 보내 전시도록이나 제품의 구매를 유도한다.
애플은 아이비콘사업을 시작하면서 시범사업격으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와 계약하고 야구경기표의 구매부터 경기장내의 편의시설 위치에 대한 안내, 해당 경기에 대한 정보, 야구모자와 같은 기념품의 구입을 위한 쿠폰 발행과 결제에 이르기까지 아이비콘을 사용하고 있다.
AIDC와 IoT
아이비콘은 사용자의 위치를 기반으로 정보를 보내주는 서비스이자 장치이다. 여기서 보내는 정보는 위치만 식별하여 동일한 정보를 보내는데 만일 어떤 고객인지를 식별하여 인식한다면 그 서비스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고객의 성별과 나이만 인식한다고 해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많다. 여성고객에게는 여성들이 흥미있을 만한 제품의 쿠폰을 보내고, 같은 여자라도 20대가 좋아하는 물건과 40대가 좋아하는 물건이 다르니 거기에 맞추어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여자에게 남성 화장품 쿠폰을 보내봐야 아무 쓸모가 없다.이뿐만 아니라 보안 역시 매우 중요하다. 비콘 기술은 결제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NFC와 달리 결제 전용 플랫폼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적용 범위나 범용성, 거리, 보안성 등에서 NFC와 비교해보면 장단점이 존재한다. 어떤 방식이든 결제를 수반하는 경우 보안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며 상업서비스와 연결된 개인정보의 보호 역시 핫 이슈이다.
서비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고객 개개인의 정보를 많이 알수록 더 정교한 서비스가 가능해지지만 고객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보가 수집되어야 할 것이며 고객의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만큼 외부에서의 공격시도도 늘어날 수 밖에 없기에 보안에 대한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높다.현재까지 IoT가 우리 생활 속에 깊게 들어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국의 사례를 보면 그렇게 먼 이야기도 아니다 늦어도 내년까지는 한국에서도 IoT가 일상생활에 들어올 거 같다. 한국에 새롭게 열린 IoT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지금부터 궁금하다.
"이 손은 비록 작은 손이지만 xx사를 크게 키울 손입니다."
몇 년 전 모 포털의 개발 팀장은 입사 면접에서 10명 중 세 명 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마치 짠듯이 똑같은 포즈로 손을 펴면서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했다. 나중에는 지원자가 손을 펴면 됐으니 그만하라고 할 지경이었다. 결과는 그렇게 손을 펴고 주문을 외었던 지원자는 전부 떨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번 컬럼에서는 IT업계에 구직자들에 대한 다섯 가지 작은 조언을 준비했다.
1. 다른 사람의 성공담을 듣고 따라하지 말라
많은 지원자들이 저렇게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면접 성공담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걸 처음 써먹은 지원자가 합격을 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취업카페같은 데에 올려놓았을 것이고 취준생들이 보기에 나름 모션도 있고 대사도 의미 심장하니 보기에 좋아 보였을 것이다. 일단 처음에 성공한 지원자가 저렇게 했다고 해서 그것이 합격의 결정적인 요소였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학벌이나 성적, 외모, 집안 기타 여러가지 요소에서 이미 합격선 안에 들어온 지원자라면 저런 것을 하든 말든 합격했을 것이고, 나머지가 안 되는 지원자였다면 저렇게 해도 떨어졌을 것이다. 즉 저것을 첫 번째로 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따라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보다는 확실히 감점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 성공담은 자신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수 많은 취준생과 면접관이 볼 수 있다.
2. 취준생끼리 몰려다니며 스터디하지 말라
취준생들끼리 취업스터디 한다고 토즈같은데서 모의 면접하는 것처럼 시간 낭비가 없다. 그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은 떨어진 상황에 대한 지원자의 경험담뿐인데 그런 실패한 경험담은 백날 공유해봐야 도움되는게 없다. 취준생들끼리 보는 시각은 그저 자신들의 입장일 뿐이며 면접관의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 스테레오 타입화된다. 그렇다면 2~3년 먼저 입사한 선배들을 불러서 모의 면접관을 시키면 어떨까? 그들도 역시 지원자나 별차이 없다. 정말 취업이나 면접에 대해 조언을 얻고자 한다면 실제로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면접관으로 들어가는 팀장급 이상의 주변지인에게 부탁해야 한다.
면접은 대체로 2단계로 나뉘어지는데 인사과 면접과 실무면접이고 그 이후 임원 면접은 앞서 결정된 사항을 컨펌하는 자리일 뿐이다. 인사과 면접은 누구를 뽑는 면접이라기 보다는 안될 사람들 걸러내는 작업이고, 가장 중요한 면접은 역시 실무 면접이다. 스펙이 좀 모자라도 실무면접에서 업무를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3. IT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실력이다
필자가 IT 업계에 몸담으면서 다른 분야들보다 이 분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분야보다 학벌이나 스펙 이런 것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력이 확고하다면 타 분야에 비해 취업이나 창업에 훨씬 유리하다. 만약 C와 C++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개발자라면(남의 소스 Ctl-C, Ctl-V 하는 것이 아니라) 토익이 몇 점이던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얼마 전에도 나왔지만 국내의 한 미대생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미국 애플에 입사했다. 어학연수 경험도 없고 스펙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이나 학점은 바꿀 수 없는 항목이고, 영어점수가 낮아서 불안하고, 스펙이 낮아서 또 불안하다고 영어점수 올리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남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 줄만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투자하는 것이 훨씬 취업에 도움이 된다. IT 업계 취업에서는 반대로 스펙이 아무리 좋더라도 실제 코딩이나 디자인 등의 실무 능력이 딸린다면 취업이 안 된다. 스펙을 쌓지말고 실무능력을 키워라.
4. 자신만의 경험과 시각, 생각이 중요하다
앞서 나왔던 이야기의 보충설명이다. 지원하려는 회사가 자동차나 전화기를 만드는 제조업체같은 곳이라면 그냥 무난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공장에서 찍어 나온 듯이 행동하면 된다. (물론 요즘에는 제조업체 조차 찍어나온 듯한 인재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창의적인 인재라는 것은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 흔하지도 않고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창의적인 인재가 아닐 수 밖에 없는 교육환경속에서 자라고 훈련받아온 사람이 어설프게 창의적인 인재 흉내를 내는 것보다 그냥 남들과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 잘 설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점수를 딸 수 있다. 회사 면접관들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지원자들이 하나같이 까만 양복과 흰 블라우스 정장을 맞춘 듯 똑같이 입고 오는 것을 보고 몰개성에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하면 중간은 간다고 하겠지만 경쟁률이 2:1 이 아닌 이상 중간이면 떨어진다. 특히 IT 업계는 입사 후 정장을 입고 다니는 곳이 1/10도 안 된다. 개성있게 정장을 입으라는 게 엄청 튀게 입으라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까만색, 곤색만이라도 피해보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질문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에 의거한 ‘정답’을 말하려 하면 거기에 온 다른 평범한 지원자의 대답과 같을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남과 같아서는 절대 성공적으로 취업하기 어렵다.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자신만의 시각과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어떤 문제해결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그들이 요구하는 답은 누구나 생각하는 뻔한 정답을 듣고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5. 취업성공에 대한 요령이나 공식은 없다
취업에 대한 가장 큰 착각 중에 하나는 ‘자신의 실력이 있으면 회사에 취업된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회사는 지원자가 실력이 좋다고 뽑아 놓고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일단 회사에 자리가 먼저 생겨야 거기에 맞는 직원을 뽑는 것이다. 즉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T.O가 없다면 그 회사에 입사하기는 어렵다. 이런 것은 실력보다는 운대가 맞아야 하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회사의 부서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도 관건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학입시 보듯 다 똑같은 조건에서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것같이 보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미리 선발한 후 절차에 따라 입사프로세스로서 공채를 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입사전형 이전에 이미 전형에 통과된 케이스이다. 회사에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수한 인력을 먼저 확보하는 효과와 더불어 미리 실무에서 검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지 않는 지원자는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사회란 그런 곳이다. 오히려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것이 맞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어떤 지원자는 이러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무슨 공식처럼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하는데 그런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기회들은 우연히 그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눈에 들 수도 있는 것이고, 자신의 부서에 학교 후배를 넣고 싶은 과 선배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 평소 본인의 활동영역과 인간관계, 타이밍, 운 이런 것들이 복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절대 영어점수 올리겠다고 도서관에 처박혀서는 생길 수가 없다.
이 컬럼에 쓴 5가지 조언은 말 그대로 조언일 뿐 ‘취업 성공의 공식’이 아니다. 이 다섯가지 조언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남들과 같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리에 섞이려는 습성이 있고, 특히 한국사람들은 남과 다른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까지 있다.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처럼 그렇게 남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심리적으로 안정은 되고 중간은 가겠지만 결국 입사에는 실패한다. 회사에서 뽑는 사람은 비슷비슷한 중간을 뽑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항해술의 발달과 지리상의 발견을 바탕으로 15세기부터 시작한 '대항해 시대' 이후 탐욕의 서구 제국들이 세계의 패권을 주도하고 있었다. 서구 열강들은 부의 축적을 위해 항해술 뿐아니라 총과 같은 무기와 공성기들을 만들며 전쟁의 기술들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가장 선진국은 중국이었다. 철학과 학문, 행정 뿐아니라 종이, 화약, 도자기, 실크 등 제조나 예술분야에서도 중국은 가장 선진 문화를 가진 국가였다. 이러한 중국의 문화적인 선진성 때문에 아편전쟁이 있던 1840년까지 서구 열강들은 중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했다. 단지 지리적으로 멀어서 늦게 침략했다고만 보기에는 남미가 이미 1500년대에 거의 모든 원주민이 학살된 후 서구의 식민지가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차 아편전쟁과 2차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청나라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러일전쟁이후 청왕조가 막을 내리고 쑨원에 의해 1912년에 중화민국이 탄생하였지만 이후 20년간의 군벌 체제, 일본의 침략, 공산당과 내전, 2차 세계대전, 냉전 등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면서 경제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앞선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특히 60년대에 있었던 '문화대혁명'을 통해 마오쩌둥이 공산당 내부의 정적들을 숙청하고 권력을 잡는데 성공하였으나 그 부작용으로 중국의 경제나 문화는 황폐화됐다.
마오쩌뚱 사후 문화대혁명에 대해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극좌적 오류'라는 평가를 내렸으며 현재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로 아예 '문화(文化)'라는 단어를 없애버렸다. 우리가 문화라 칭하는 말을 중국에서는 '문명(文明)'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아편 전쟁이후 1972년까지 120여년 동안 중국이 폐쇄된 침체기를 겪었고 1992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산업화 시작 후 22년간 중국의 제조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였다.
현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우며 제조업 생산에서 세계 1위이다. 특히 IT 분야의 제조업은 중국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중국 제품에 대한 편견은 대개 주변에서 흔히 보는 싸구려 중국제품 때문에 가지고 있다. 중국의 제조업 수준을 그런 제품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중국의 제조업은 아주 싸구려부터 고품질의 다양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보는 것처럼 중국제품이 저급한 것은 중국 제조업체의 문제라기보다 싸구려를 주문하는 한국 수입업자들의 문제이다.
최근 중국단말기를 보면 중국 제품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 정도로 성능이나 디자인 면에서 수준이 높아졌다. 가장 급부상한 단말기기 제조업체인 샤오미는 불과 설립한지 4년밖에 안된 신생회사이며, ZTE나 화웨이, 하이얼 같은 중국 스마트폰업체의 강력한 성장이 한국 스마트폰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OPPO를 비롯한 샤오미나 ZTE가 가전 뿐아니라 모바일 제조 분야에서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극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중국업체에 의해 한국 스마트폰 업체의 봄날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각 업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성공시킨 이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학문은 '인문학(Liberal Arts)'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에 나와 애플 성공의 비결이 인문학이라고 말하자 마자 언론을 선두로 각종 인문학 전문가가 등장하여 인문학을 팔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인문학 관련 책과 강연, 기사, 인터뷰 등이 쏟아져 나왔다.
서양 인문학의 전통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문화에서 출발하였으며 철학과 역사, 고전문학, 문예, 언어, 종교, 미술사, 음악사, 공연예술 등을 총망라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인문학이란 '서양에서 인간에 관한 학문들의 집합'을 말하는 것으로 개별적인 전공과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문학은 특히 신에서 인간으로 중심이 바뀐 르네쌍스 시대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이라는 말은 '사용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제품을 개발했다'는 말을 좀 있어 보이게 표현한 것이다. 비교하자면 대입시험에 수석한 학생과 인터뷰했을 때 '학교수업과 교과서를 중심으로 예습/복습을 철저히 했다'라고 대답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문학팔이들이 재미를 보자 다른 한쪽에서는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 중에 '인문학'에 해당하는 것이 없자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교차점'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한동안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과 통섭을 통한 창의적 인재라는 유행어가 들불처럼 번져 갔으며 모 회사에서는 작년에 인문계 대학 졸업자 중 선발하여 6개월간 소프트웨어를 가르쳐 단기간에 융합형 인재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까지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웹사이트에 공고만을 봤기 때문에 실제로 문과생들을 뽑아 소프트웨어를 6개월간 가르치고 통섭형 인재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결과를 알수는 없지만 2013년의 첫 번째 모집 공고 이후 2014년 모집공고가 검색되지 않는 것을 봐서는 그 결과가 회사의 기대에 못미친 것 같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인으로서 가장 완벽한 융합-창의 인재의 표상은 고 백남준 선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남준 선생을 한국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정도로 알고 있지만 그는 단순한 미술작가가 아니었다. 당시 일제 치하에서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한 후 홍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동경대에 입학하여 학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음악사학을 부전공한 후 졸업하였다. 다시 서독의 프라이부르크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뮌헨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학교에서 철학석사와 음학사학석사를 받았다.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학교는 1472년에 개교한 유럽에서 가장 전통있는 명문대학 중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세계 최고의 명문 미술대학인 뉴욕의 프렛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고 역시 세계 최고의 공대인 MIT 전자학과에서 교수초빙을 받을 정도로 전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언어에서는 한국어,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으며, 홍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광동어도 능숙했을 것이다. 백남준 선생이 이룩한 업적은 이러한 다채로운 문화적 배경과 그의 철학/역사/미술/음악/전자학의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융합적 사고와 창의를 바탕으로한 통섭에서 나온 결과물인 것이다.
백남준 선생이 융합적 인재가 된 것은 단순히 그가 대학에서 여러 가지 학문을 전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에서 유소년기를 보내고 홍콩에서 고등학교시절을, 청년기에는 동경과 독일에서 살았으며 1964년 이후 뉴욕에 이주하여 활동을 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자양분이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다양한 문화, 역사, 철학을 중심에 두고 있다.
백남준 선생을 보면 융합적 인간은 일단 두뇌가 좋아야 한다. 대학 졸업 이후 대학원의 진학은 머리보다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더 많이 반영되지만 백남준 선생이 졸업한 동경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학부 중 하나이다. 백남준 선생은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갈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범인이 동경대 같은 세계적인 명문대를 나왔다면 이를 스펙삼아 평범한 회사원으로 잘 살아갈텐데, 백남준 선생은 이에 그치지 않고 독일로 가서 계속 공부를 했다.
역시 보통 사람이라면 독일에서 학위를 따고 교수직을 구했겠지만 백남준 선생은 교수를 하기 위해 석사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MIT 교수제의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잘 모르는 수 천명의 MIT 교수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독일에서 미술과 철학, 음악사학을 공부한 것은 지식에 대한 탐구욕이다. 융합적 인재의 소양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노력을 통해 여러 분야의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융합적 인재는 절대 단기간에 공장에서 제품 만들듯이 생산되지 않는다. 백남준 선생 같은 천재도 거의 2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달랑 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6개월간 소프트웨어를 가르친다고 융합적 인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본 고는 2014년까지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흐름과 현재의 상황분석 및 2015년에 분화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에 대한 예측과 시사점을 담았다.
삼성, LG와 같은 구글의 제조사들의 2015년 대응은 결과적으로 구글이 얼마나 완성도 높은 안드로이드 웨어와 뒷단의 에코시스템 / 플랫폼을 제공해 주느냐에 달려있으며 동일한 플랫폼을 제공받는 중국 제조사들보다 얼마나 경쟁력있는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일 것이다.
한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예술품을 선택한다면 '고려 청자'를 꼽는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고려 청자도 만들어진 시기나 기법에 따라 여러 종류의 청자가 있으며 따라서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고려시대 때 청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병이나 주전자 뿐 아니라 베개나 바둑판, 술잔처럼 생활에 밀접하게 사용되는 일상도구로서 많이 만들어졌다.
청자 중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수 억 원에 달하는 고려청자들은 원래부터 예술품으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고려상감청자 운문화병'이라면 이름은 '구름문양이 들어간 꽃병'이지만, 용도 자체가 본디 꽃을 꽂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감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술품들이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은 원래 고려시대 때부터 고가로 팔리던 것들이며 지금도 비싸게 팔린다. 고려시대 당시 생활자기들은 고려 청자지만 지금도 그리 가격이 높지 않다.
이러한 예술 작품 도자기들이 옛날에 얼마나 비쌌는지 알 수 있는 예가 바로 오스트리아 빈의 쉔부른 궁전이다. 쉔부른 궁은 한때 중부 유럽을 제패하던 오스트리아 합수브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사 여제의 궁전이다. 이 궁에는 1700년대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도자기들은 당시 같은 무게의 순금으로 지불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금으로 지불된 도자기 중에는 작은 찻잔부터 사람의 키보다 큰 2미터 가량의 거대한 도자기도 꽤 많이 보인다. 당시 도자기로 만든 머그잔 가격을 계산해 보자. (머그잔의 무게가 대략 300g 정도) 금 1g의 가격이 4만2천원이라 치면, 그 머그잔의 가격은 1천270만원 정도이다. 2미터 도자기의 무게가 30Kg이라면 1700년대에 12억6천만원짜리인 것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도자기를 운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실크로드를 건널만하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은 도자기의 산지라 이 정도까지 비싸지는 않았겠지만 고려에서도 역시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긴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예술작품의 가치는 오래되었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은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예술품과 별개로 빈티지(Vintage)는 골동품을 말하는 데, 보통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는 제품을 뜻한다. 골동품의 가격은 희소성이나 역사성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술품과 마찬가지로 출시 당시 비싸게 팔았던 고가제품들이 일반적으로 비싸다.
예술품이나 빈티지가 아니고 근래 만들어진 비싼 제품들을 '명품(名品)'이라고 한다.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브랜드들은 외국에서 '럭셔리(Luxury)'라고 칭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명품'이 아니라 '사치품'이 된다. 사치품과 명품은 결국 같은 단어지만 어감의 간극이 매우 크다. 사치품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명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 대치한 것이다. 마케팅과 광고 덕분에 일반 명사화하여 널리 쓰고 있지만 결국 '명품'이라는 단어는 원래부터 내려오던 단어가 아니라 근래에 만들어진 단어이다. 일본에서도 '‘명품(名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듯이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똥 같은 고가품보다는 주로 일본 명인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제작되어온 칼이나 그릇 같은 공예품, 지역 특산물 그리고 특히 한국과 다른 점은 미술 회화작품을 명품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브랜드'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최고급 제품 브랜드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서 명품의 일본어 번역결과는 ブランド(브랜드)라고 되어 있다.
현재 한국에서 명품의 정의는 최고급 품질의 최고가 패션제품을 뜻하지만 온갖 마케팅에 붙이는 접두사로도 사용되고 있다. 가격을 좀 높게 설정한다 싶으면 너도나도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名品 한우, 名品 호텔, 名品 햄버거…자칭 명품이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의 명품이라는 단어의 선호와 품질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겠지만 사실 명품은 품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명품백으로 유명한 루이비똥은 1854년에 설립해 160년의 역사가 있으며 그보다 더 비싼 에르메스는 1837년부터 시작되었다. 품질은 기본이고 그 이전에 브랜드이며 브랜드는 철학과 스토리, 역사를 가져야 한다. 단지 품질이 좋다고 단기간에 명품이 된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인은 자신이 미인임을 알지만 스스로 미인이라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주변에서 미인임을 인정한다. 명품도 이와 같아서 실제 명품브랜드들은 사람들이 명품임을 인정하기에 제품명을 명품이라고 붙이지 않는다. 90년대 한국에서 한 가전업체가 TV이름을 '명품(名品)'이라고 붙여서 판매한적이 있다. 당시는 독점적인 시장 구조 때문에 적당히 많이 팔았겠지만 생각해보면 실소하게 만든다. 가전/음향분야에서 명품이라 할만한 브랜드는 단연 B&O 이다. B&O보다 가격적인 면에서 훨씬 더 비싼 앰프나 스피커도 많지만 B&O의 제품에 담겨있는 철학이나 디자인, 그리고 가전업체로서 오래된(1925년 설립) 전통과 역사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IT나 디지털 쪽에서는 아직 명품이라 할만한 브랜드나 제품이 없다, 회사의 역사와 철학, 브랜드 스토리, 제품의 디자인이나 품질 면에서 애플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브랜드이긴 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IT 분야는 역사 자체가 짧아 명품이 갖추어야 할 브랜드로서의 역사성을 쌓기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란다. 이러한 시간과 브랜드의 갭을 메꾸는 방법으로 한때 패션 명품 브랜드를 빌려와 휴대폰에 붙이는 이른바 콜라보레이션이 유행한적이 있었다. 프라다폰, 아르마니폰, 베르사체폰 등 온갖 패션 브랜드가 전화기에 붙여져 판매되었다.
왜 프라다폰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팔렸을까? 명품 브랜드의 속성은 결국 자기 과시이다. 여성들이 사는 명품들 중 대다수가 백인 이유는 들고 다니면서 자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나 40대 여성들도 명품백을 들고 다니면서 자랑하겠지만 그들은 굳이 들고 다니는 백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사는 고급아파트나 자동차 등으로 부를 과시 할 수 있기 때문에 백은 여러가지 과시 물품 중 하나일 뿐이다.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명품백이나 명품구두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부모집에 얹혀 살고 있고, 과시할만한 차를 사서 끌고 다니기에는 경제력이 떨어져 명품 백에 투자하는 것이다. 몇 백 정도 백이라면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차나 집과는 달리 월급을 모으면 사는 것이 가능하다. 프라다폰이 많이 팔린 이유 역시 명품백이 많이 팔린 이유와 다르지 않다. 백은 옷차림에 따라 바꿔줘야 하므로 같은 백을 매일 맬 수 없지만, 전화기는 항상 같은 전화기를 들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다. 가격도 몇 백 만원짜리 프라다백보다 싸다.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던 명품폰들이 어느 순간부터 소리 소문 없이 출시되지 않았다. 명품은 희소성에 의한 가치가 중요한데 휴대폰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제품은 그런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처음에는 전화기에 인쇄된 명품 브랜드에 혹했지만 결국 휴대폰 자체는 일반폰에 브랜드를 인쇄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누구나 들고 다니다 보니 전화기에 아무리 명품브랜드가 찍혀있어도 명품으로 인정을 안 하는 것이다. 명품을 사는 이유가 과시인데 과시가 안 되니 자연적으로 수요가 없어져 버려 이제는 프라다를 마지막으로 명품 브랜드 스마트폰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한국이 디지털분야에서 명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확고한 기업철학과 혁신적인 디자인, 선도적인 기술, 높은 품질 등을 갖춘 상태에서 상당한 시간을 유지한 이후에야 외부로부터 명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지 단순히 몇 개 제품이 기능적인 면에서 잘 작동된다거나 기존의 명품 브랜드를 빌려온다고 명품이 되는 게 아니다. 명품이라고 마케팅을 한다고 명품이 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1925년 미국에서는 찰스라는 전직 은행원이 사람들에게 높은 투자 수익율(90일만에 원금의 2배 수익보장)을 약속하며 투자금을 유치하였다. 찰스의 사업은 국제우편쿠폰이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환율로 거래되는 것에 착안하여 해외에서 국제우편쿠폰을 대량 구매한 후 미국내에서 재판매함으로서 차익을 얻는 사업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찰스에게 투자한 사람들은 실제로 높은 수익 배당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사업이 소문나면서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 사업이 초기에 잘된 이유는 단순했다. 투자금을 유치한 찰스는 초기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을 나중에 투자받은 돈으로 주었고, 이를 보고 온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받은 것이다. 눈앞에서 이익이 실현되는 것을 본 기존 투자자나 이들의 지인들은 대출을 해서라도 투자를 했고, 투자규모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사업으로 찰스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 사업의 맹점은 약속한 수익(부채)의 규모가 이자율을 넘어서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부채가 커져간다는 특징이 있으며 어느 시점에 가면 투자원금보다 지급해야할 수익금이 더 커져서 지급불능의 상황이 오게 되어 있다. 찰스 역시 나중에는 수익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이 사업은 사기로 판명되어 미국 전역에서 4만명이 1천500만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이런 종류의 사기 사건을 사기꾼인 찰스 폰지(Charles Ponzi)의 이름을 따서 '폰지 사기(Ponzi Scheme)'라 부른다. 폰지 사기는 찰스 폰지가 처음 시작한 사기기법은 아니지만 사기 규모가 컷던 찰스의 폰지 사건이 최초로 사회문제화 되었기에 사기꾼 찰스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서는 2008년 ㈜리브라는 사기회사로 3만명에게 5조원대 피해를 주고 중국으로 달아난 조희팔 사건이나 2009년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메이도프 사건 역시 똑같은 폰지 사기였다. 큰 사건이 아니라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뿐 작은 규모의 폰지 사기는 지금도 지천에 널려 있다.
폰지 사기는 그 원리만 동일할 뿐 세부적인 수법이 같지는 않다. 찰스 폰지 시절의 단순 투자 사기가 아니라 다단계와 유통, 마케팅, 네트워크 마케팅 등 여러 기법이 혼합되면서 폰지 사기 수법도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하여 언듯 보기에 폰지 사기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피해자가 자신이 투자에 실패했을 뿐이라고 생각하여, 사기 당했다는 자체를 모를 정도로 사기 수법이 고도화되어 버렸다.
IT 업계의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초반의 리타워텍 사건이었다. 리타워텍은 원래 파워텍이라는 작은 송풍기 제작회사였는데 2000년 1월 하버드대 경제학과 출신이라는 대표가 들어서 회사이름을 리타워텍으로 바꾸고 인터넷 회사로 갈아타면서 6개월 동안 30여개의 벤처기업을 인수하였다. 이 회사는 2000년초 시가총액이 100억원도 안되었었는데 34일 연속 상한가라는 기록을 세우며 단기간에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하였다.
하버드 경제학과 출신의 '선진 금융 기법'을 통한 사업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한 주식 스왑을 이용해 유망했던 벤처기업의 주식을 실제로 돈을 거의 안들이고 인수했으며 이때 주식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수법으로 외형을 불려나갔다. 이뿐만 아니라 리먼브라더스에게 1조4천억원을 빌려오면서 이를 투자라 공시한 후 주가를 올리고 단 3시간 만에 이 돈을 다시 상환하였다. 이때 들어간 3시간의 이자만 44억원이었다. 2000년 실적이 2억원에 1조5천150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내자 리타워텍의 주가가 빠지기 시작하면서 하버드출신의 회장은 미국으로 출국해버렸고, 대표로 남아있던 사장은 2001년 3월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리타워텍은 상장폐지되면서 리타워텍은 최후를 맞이 했다. 상장폐지 당시의 주가는 고작 20원이었다.
인수합병한 회사들이 매출과 수익을 못 내는데다가 2000년대 일어났던 인터넷 투자거품이 꺼지면서 더 이상의 투자가 안 들어오자 폰지 사기와 마찬가지로 침몰한 것이다. 이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에서 피해를 봤고, 주식교환으로 회사를 넘겼던 많은 자회사의 경영진들은 실제 현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매출과 수익 없이 주식스왑을 통한 인수합병으로 외형을 키우고 주식가치만 인위적으로 올린 후 투자금을 끌어 모아 운영하다가 더 이상 투자가 안 들어오자 쓰러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리타워텍 사건은 주가조작, 허위공시에 관한 사건이며 사기사건으로 분류되지 않고 흐지부지 끝났지만 사건의 본질은 폰지 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리타워텍 사건을 주도한 사람의 미국명이 '찰스 스팩맨'으로 폰지 사건의 주인공인 '찰스 폰지'와 이름이 같다.
근래 모바일 및 IoT 관련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리타워텍과 유사한 사건이 내년 정도 재연될 것 같은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이 분야에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리타워텍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앞서 말했지만 요즘의 폰지는 옛날의 폰지가 아니다. 리타워텍 사건에서는 아래와 같은 징후들이 있었다.
1. 주식맞교환을 통한 인수 합병으로 인위적으로 외형 늘리기
2. 검증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회사가치 과대포장
3. 실적보다는 국내외의 투자유치 소식
4. 해외기업 M&A 소식
5. 언론에서 경영진의 과거 경력을 바탕으로 현재 회사를 띄움
이 다섯 가지에 해당하는 기업은 회사 규모에 걸맞는 매출과 이익이 나지 않으면, 곧바로 투자가 끊기면서 폰지 사기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합병이나 투자는 자기책임하에서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2009년 9월9일 애플은 애플레코드와의 30년 넘는 분쟁을 끝내고 비틀즈의 음원을 아이튠즈에서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한국의 상황 때문에 못하는 서비스도 있다. 분실기기 위치 추적 서비스인 '내 아이폰 찾기' 기능은 위치추적이 불법인 한국의 국내법 때문에 서비스가 안되고 있다. 위치 추적 서비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중에 앱이 게임을 포함해서 제대로 서비스를 시작한지도 얼마 안되었고, 음악, TV, 영화, 책, 아이튠 매치, 아이튠스 라디오가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터키에도 있는 애플스토어가 한국에는 단 한 곳도 없다.
미국에는 애플스토어가 51개주에 254개가 있는데 주당 평균 5개 정도이다.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도 아니고 몇 명 살지도 않는 미국 중부에 위치한 시골같은 주의 다섯번째 도시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미네소타주의 작은 도시인 미니애폴리스에만 애플스토어가 5개 있는데,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총 인구수는 38만7턴970명(위키피디아)이다. 애플코리아가 위치한 서울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강남구의 인구가 52만7천600명(위키피디아)인데, 강남구의 인구수나 애플 제품 매출이 미니애폴리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한국이 다운로드 파일의 저작권 보호가 취약해서 그렇다고 치자. 스트리밍 서비스로 다운로드 저작권과 전혀 상관이 없는 아이튠스 라디오, 아이튠스 매치는 무슨 핑계로 서비스를 막는 것일까?
음악의 경우 국내 가요를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한국음악저작권 협회, 한국음원저작권협회, 한국실연자협회 등과 음원 위탁 판매 계약을 하거나 기 위탁 판매 사업자인 멜론, 소리바다, 도시락과 협상을 해야 한다. 사업자들의 반대로 가요가 서비스 안 된다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가요가 아닌 팝이나 락, 재즈, 클래식도 안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심지어 소리바다는 애플과 계약해서 한국 가요 음원을 외국 아이튠즈에서 팔고 있다. 한국 아이튠스에서만 오히려 서비스가 안되고 있는 웃기는 상황이다.
영화나 TV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영화는 국내 영화사, TV는 국내 방송사와 일일이 계약해야 한다지만 미국을 포함한 외국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 아이튠스에 서비스 되지 말아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이쯤되면 한국에서 아이폰이 부진한 이유가 한국이 삼성전자의 안방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가트너에 따르면 2011년 애플코리아의 매출이 1조8천802억원으로 추정한 자료를 발표했는데 (애플코리아는 2009년 유한회사로 전환하여 공시의무가 없다.) 일본보다야 낮겠지만 애플코리아가 짐바브웨나 터키보다 매출이나 이익이 낮을 수는 없다. 애플코리아의 매출은 아마도 세계 10위권 국가에 들어갈 것이다.
첫째, 한국 아이튠즈에 음악, 영화, TV, 책 등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공식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둘째, 한국 아이튠스에 다운로드와 상관없는 아이튠스 라디오, 아이튠스 매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셋째, 한국에 애플 스토어가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리셀러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다고 쳐도 판매와 직접 상관없이 사용자를 지원하는 지니어스바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넷째. 애플코리아(유)는 영업활동과 기본적으로 법률이 정한 AS관련 활동 외 한국의 애플 사용자들에게 무엇을 서비스하고 있는가?